문화예술계에 떨어진 발등의 불은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재발 방지’다. 박근혜정부가 입맛대로 문화예술인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 정책의 공정성 확보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문재인정부와 문화예술계에서는 한목소리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행정의 ‘팔길이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화예술인 복지 증대, 생활문화 확대,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도 문재인정부의 주요 관심사다. 문화예술계는 이외에도 문화 다양성 확보와 균형 있는 문화정책, 중국 한한령(限韓令: 한류제한령) 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 재발 막아야… 예술인 복지 증대도

문화계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 세우기가 반복됐다. ‘문화권력’이라는 말이 나돌 만큼 정권의 향배에 따라 쏠림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블랙리스트’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정부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치적 입김을 차단하는 장치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정부·문화예술지원기관·문화예술계 간 공정성 협약 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 문화예술 지원기관들의 독립성·자율성을 확보하고 지원 심사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구체적으로 기관장 선임·위원회 구성 때 문화예술인의 참여와 추천권을 보장하고, 심의위원과 심의과정의 작성·보관·공개를 의무화한다. 문화행정에 불만이 있을 경우 이의를 제기하는 옴부즈맨 제도도 도입한다.

문화계에서는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없는 제도 개선은 미봉책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연극협회 측은 “청와대→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내려오는 예술계 지배구조는 MB(이명박)정권에서 박근혜정부로 이어져왔다”며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이 선행돼야 재발 방지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연극협회는 또 “한국문화예술위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는 민간 예술가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되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재원 확보도 시급하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은 문화예술 분야의 대표적 정부 지원자금이다. 문재인정부는 국고 출연을 확대하고 체육·관광기금을 전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체육·관광기금 활용은 ‘돌려막기’로 근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술인 복지는 문재인정부가 초점을 맞추는 분야다. 우선 프랑스의 ‘앵테르미탕 뒤 스펙타클’(Intermittent du spectacle) 같은 예술인 실업급여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엥테르미탕 뒤 스펙타클은 공연·영상 분야의 비정규직 예술인에게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다. 또 예술인이 공정한 보수를 받도록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고, 경력·활동 유형에 따른 표준보수지급 기준을 마련한다. 저작권 수익분배 기준 강화, 예술인 체불수입 보장제도, 예술인복지금고를 통한 긴급생활자금 지원도 실시된다.

이와 관련해 연극계는 “현 예술인복지법에는 예술인의 사회보장 확대지원 등에 대한 조항이 있으나 시행령·시행규칙에는 구체적 실행 방안이 없다”며 “사회보험 적용·실업급여와 연금 지급 등의 실현 방안을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생활 속 문화 향유 확대… 일상에서 누리자

문재인정부는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의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도 내놓았다. 문화·체육·관광 지출비에 세액공제를 적용하고 문화누리카드의 사용처를 확대하며 금액을 현실화한다. 또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확대, 동네 생활문화 환경 조성, 생활문화 동아리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문화진흥기금 확충, 폐산업시설·노후거물·지하상가 등을 활용한 지역문화재생사업 지원, 문화도시 지정 활성화 등도 검토된다. 공공도서관 확충, 독서문화 진흥을 위한 예산 확대 등도 언급했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과거 출판 정책들을 보면 독서율이 낮아져도 신경 쓰지 않고, 산업적 측면에서 매출을 올리거나 한류에만 관심을 기울였다”며 “문화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또 “송인서적 부도 사태 이후 출판산업진흥기금을 만들려 하고 있는데, 출판인들이 직접 기금을 조성할 수 있도록 법적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에 대해서는 좀더 지켜볼 것을 주문했다.

대중문화계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거세진 중국 한한령 대책을 요구했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측은 “중국 수출이 막힌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 투자된 중국 자본이 빠져나가고 있으며, 일부 중국 관계자들은 한국 기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대책 마련에 대한 전반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 측은 “대중문화의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표준전속계약서와 방송출연계약서의 개선 및 운영이 필요하다”며 “표현의 자유를 위해 청소년유해매체물제도, 게임셧다운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니지먼트연합 측은 또 “정보통신·미디어·플랫폼 소관부처가 문화산업을 관할하는 방식에 반대하며 문화산업 진흥 및 규제업무는 문화부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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